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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 김재명 : 커피 대중화와 국산화 시대를 열다

김광동 | 2015-12-11 | 조회수: 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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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주당 12.3회(2013년) 커피를 소비한다. 국민 1인당 평균 하루 2잔 정도의 커피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 횟수는 밥먹는 횟수(7회)보다 많고, 김치(11.8회)를 즐기는 횟수보다 많다. 국민의 필수적 기호식품의 반열에 있다. 실제 주변을 돌아보면 길거리 상점 몇집 건너마다 커피샵이 하나 있는 정도다. 아침 출근글이나 점심 직후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항상적으로 마주칠 정도로 커피없는 한국인의 일상을 생각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어느덧 커피는 한국인의 일상 문화가 되었고, 고추나 사과를 먹는 것 만큼이나 짧은 시간에 광범위하고도 일상적인 소비품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커피는 서양인들나 먹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한국인이라면 황제나 상층계급의 전유물과 같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황제로 1895년 러시아공관에 머물 때 첫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후 왕실이 들여와 주로 왕족이나 귀족계층들이 마시는 기호식품으로 출발했다. 일반인도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1897년 안토니트 존탁이 건립한 인천의 존탁호텔의 커피하우스가 개점되면서다. 한국내 커피 1호점이라 할만하다. 그후 1920년, 30년대를 거치며 도시에서 커피를 파는 다방이 확산되면서 커피는 제한된 상류층과 엘리트층의 기호식품이자 과시음료로 확산되었다. 광복(1945)이후부터는 미군을 통해 들어온 인스턴트 커피가 대거 거래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 커피를 먹을 수 있는 다방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당시의 모든 커피는 여전히 미군 PX를 통해 불법적으로 암거래되는 것을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생산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불과 15년만인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회사 사무실에 인스턴트 커피나 믹스커피가 등장했고, 지하철역이나 공공장소 등에 광범위하게 커피 자판기가 깔리며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누구나 커피를 마시는 시대가 열렸다. 그런 수준의 커피 대중화를 이끄는 데는 동서식품이 있었다. 1968년 창업된 동서식품은 1970년 세계적 식품회사인 미국 제너럴푸드사(General Foods)와 기술 도입 및 합작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커피 빈(bean)을 수입하여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커피 순매출액 대비 3%의 로열티를 3년간 제너럴 푸드에 지불하는 조건으로 기술협력에 따라 '맥스웰 하우스’,, 'Good to the last drop’ 등 브랜드 및 상표사용권으로 대량생산체제에 들어섰다. 일본 제너럴푸드 소속의 린 야마모토가 미국 제너럴푸드사의 대리인으로서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해 동서식품 초기의 경영 자문과 함께 제품생산 기술 이전 및 생산과정에 관여했다. 1970년 부평공장이 완공되면서, 동서식품은 레귤러 커피 생산을 시작하였고, 연이어 인스턴트 커피 생산에 성공했다. 그에 따라 동서식품은 연간 레귤러 커피 2,500톤, 인스턴트 커피 약 500톤의 국내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는 커피제조사로 성장했고, 본격적 국산 커피제조 시대를 열었다.

 

동서식품은 설립직후 창업주 서정귀회장 사망 등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1973년 석유파동에 따른 경기침체 및 원두가격 상승이란 악재로 커피 소비가 침체되며 위기를 맞았다. 더구나 1970년대 중반 물자절약운동의 일환으로 정부는 국산차 마시기 운동이 전개되었었다. 원두를 수입해야하는 상황에서 외화를 낭비하는 커피 대신 인삼차 마시기 운동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기로에 섰던 동서식품을 인수하여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커피제조사로 만들며 오늘날 동서그룹을 일군 것은 김재명회장이다. 1974년, 김재명은 퇴직금으로 동서식품 경영권을 인수하며 커피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때 김재명은 조필제(제일제당 상무) 부사장과 이창업(제일모직 사장), 이인식, 이홍희, 김도생 등 새로운 주주들과 함께 경영권을 인계받아 현재 동서그룹의 기반을 만들었다. 김재명사장체제가 되면 동서식품 경영이 안정됨에 따라 제너럴푸드사에서 파견되어 왔던 일본인 공동 대표이사가 사임하고 경영 전반을 한국 측이 맡아나가게 되었다.

 

인스턴트 '커피믹스’ 문화를 만들다

 

전주제지(한솔제지)사장으로 재직중이던 김재명회장은 이병철 삼성회장이 처음 삼설물산 사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했던 기업인이다. 김재명은 조선양조(풍국주정) 공장장부터 시작해 한국비료 공장장, 제일제당(CJ)과 전주제지 및 삼성산요(삼성전자)사장 등을 거쳤다. 6.25전쟁의 와중에서 삼성물산이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조선양조 김재명사장은 비축했던 3억원의 자금을 지원해 오늘의 삼성그룹으로 커가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병철회장도 양조사업을 운영하며 대규모 유보금을 만들어놓았던 김재명사장을 신뢰하였고 김재명회장이 동서식품을 인수해 한국에서 커피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는 것을 적극 지원했다.

 

김재명과 동서식품이 기여한 것은 국산 커피제조 시대를 열었다는 것과 한국적 특수성을 살린 '커피믹스’라는 제품을 만들어 커피의 소비문화를 바꾸고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약 30년간 커피믹스는 국민적 기호품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하고 애용되었다. 길거리와 사무실에는 자판기를 통해 커피가 판매되었고, 대중식당에서는 유료내지 무료 자판기 형식으로 판매되었다. 지하철역과 도서관은 물론 버스 정거장에도 믹스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벤딩머신 형식의 판매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모든 사무실과 집집마다 커피포트와 함께 커피믹스는 구비되며, 어느 곳에든 뜨거운 물만 만들면 믹스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일반인이 마트에 가서 시장볼 때 커피믹스를 사는 것도 필수적이었고, 커피믹스를 사서 선물하는 것도 일반화되었다. 커피 중독내지 신드롬적 현상도 많았으며 하루에도 몇잔씩 마시는 것은 보통이었다. 100원이면 즐길 수 있었고 비싸야 300원이다. 그만큼 동서식품과 김재명은 국산커피 제조와 대중적 믹스커피 소비시대를 열었다.

 

커피와 함께 프림 및 설탕으로 구성된 커피믹스는 간편성과 가격에서 신기원을 여는 제품이었다. 대형마트와 슈퍼 등 소매유통 매출로 볼 때, 전체 커피믹스 매출은 2013년 1조 1487억 원이고, 그 중 동서식품이 9360억원의 매출 실적을 가지고 있다. 전체 커피믹스 시장의 81.4%을 차지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보고에 따르면 조제 커피인 일명 '커피믹스’이 생산량은 약 26만 톤이며, 한국에서 생산된 전체 커피판대액의 39.2%에 달한다. 2006년에는 무려 56%에 달했다. 적어도 2006년 이전까지는 한국에서 커피소비는 대체로 커피믹스 형태로 소비되었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2006년 이후 지속적 감소하는 추세고 전체 커피생산량에서 커피믹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30%로 줄었다. 매년 약 9% 감소하는 추세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커피소비 문화가 점차 설탕이나 크림이 들어가지 않은 인스턴트 원두커피를 선택하게 되면서부터다. 커피전문점을 통해 소비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적 현상이다.
 
'프리마’개발로 탄생한 '커피믹스’ 신화

 

1973년 커피 생산설비의 가능량은 레귤러 커피 연간 3,500톤, 인스턴트 커피 연간 500톤이었지만, 실제 레귤러 커피 1,500톤, 인스턴트 커피 233톤에 불과했다. 그것은 커피 소비자들의 외제 선호에 기인한 측면이 있었고 다른 제품들과 달리 커피는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산 커피제품은 시중에서 외제와 값에 차이가 없었다. 국산 커피의 경우, 커피 원두를 수입할 때 25%의 관세, 그리고 제품 출하시 50%의 물품세를 납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커피 소비자 출고가의 절반 이상이 세금이었다. 더구나 동서식품의 커피는 저급한 제품이라는 인식과 함께 커피는 비싼 제품이라는 인식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시장상황이 극복되는 방식은 커피가 아니라, 커피와 함께 소비되는 프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재명 등 신경영진은 1974년 신제품 개발반을 조직, 적극적 신제품 개발에 나섰고 초기 동서식품 커피는 제너럴 푸드의 기술이전으로 가능했다. 신제품 개발반에 주어진 과제는 기존의 생산설비와 기술을 활용해 커피와 관련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 결실이 동서식품의 '프리마’다. 동서식품의 커피 크리머 개발은 커피 농축액을 분무건조하여 분말 커피를 제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유나 그 밖의 다른 원료 제품을 분말로 제조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당시까지 국내에 분말 크리머는 없었기에 커피 프리머는 연유나 우유를 농축시킨 수입 액상 크리머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우유가격이 외국보다 6배 비싼 탓에 우유를 원료로 한 제품은 원가 부담이 컸었고, 또 우유 향을 좋아하진 않는 한국인들의 기호에도 맞지 않았다. 더구나 액상 크림은 제품 보관이도 불편하고 보존기한도 매우 짧았다.

 

동서식품은 '야자유를 주원료로 한 분말의 순식물성 크리머’를 제조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섰다. 한국인에게 쓴 커피가 고소한 분말크림과 함께 섞이며 국민 기호품이 된 것이다. '프리마’의 생산공정은 야자유와 전분당, 그리고 카제인 등을 배합하는 과정에서 신제품 개발반, 공업표준시험연구소에서 연구가 거듭된 끝에 1974년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고, 1975년초 '프리마’ 생산과 판매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수 있었다. 새로운 커피 크리머의 이름은 서구적이면서도 여성적 이미지로 친숙했던 '프리마돈마’라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으로 발음과 호흡을 고려해 프리마(Frima)라는 브랜드명으로 출시되었다. 프리마는 액상크리머의 모든 단점을 개선한 것이었다. 가격이 저렴했고, 보관에 불편함이 없었으며, 사용하기에도 훨씬 편리했으며 야자유로부터 나온 고소한 향이 한국인들의 기호에 잘 맞았다. 분말 크리머를 만든 것이 국민 선택에 주효했다.

 

동서의 프리마는 자체 기술로 개발한 분말식 국산 커피 크리머의 제1호일뿐만 아니라 독창적 개발된 순수한 국내 브랜드다. 프리마는 동서가 이룬 커피 국산화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순식물성 커피 크림인 프리마가 곧 커피믹스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게 만들었다. 1976년 12월 커피와 분말 커피크리머, 설탕을 이상적으로 배합한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프리마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배합비로부터 기계조작상의 컨디션 유지, 품질분석 시스템 및 노하우들이 그대로 활용되었다. 맥스웰 인스턴트 파우더와 커피크리머인 '프리마’ 그리고 설탕 등의 반제품을 한국인 표준 입맛에 맞춰 적정 배합비로 담은 1회용 커피믹스는 말 그대로 커피생산의 노하우를 응용하여 인스턴트 커피를 다른 차원 발전시킨 제품이었다.

 

커피 소비문화가 달랐던 미국제휴사인 제너럴 푸드사는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제품개발에 난색을 표했었다. 미국인 시각에서는 고객 모두의 기호를 획일적으로 맞춘 인스턴트 믹스커피라는 것을 이해되지도도, 상상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커피소비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도, '빨리 빨리’와 '속도’를 가장 중시여기는 1980년대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상 커피믹스 제품은 커피 소비를 폭발시켰다. 커피믹스는 커피 소비를 대중화시켰고 커피 문화를 완벽하게 바꿨다.

 

믹스커피가 만들어낸 한국적 커피문화와 대중화

 

커피믹스는 1980년대 한국인의 삶의 양식과 성향이 반영된 것이자, 커피가 한국 문화에 스며들게 되는 과정에 있었던 획기적 제품이다. 당시 커피를 즐기기 위해서는 몇가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었다. 커피, 설탕, 크리머 등을 따로따로 보관되어 구비된 곳이어야 했고, 물을 끓여 마실 수 있는 실내 공간이어야 했다. 커피믹스는 이러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모든 곳에서 누구나 손쉽게 커피를 즐길수 있게 만들었다. 따뜻한 물만 공급되는 곳이라면 운동장, 낚시터, 등산로, 작업장, 예비군 및 민방위 훈련장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일반 가정과 사무실, 각종 레저현장과 공사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되었다. 커피믹스 개발로 한국인이 장소와 상관없이 모든 곳에서 전천후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 제품판매는1974년 34억원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1999년 5,615억원, 2002년에는 6,916억원으로 급성장했다. 현재도 동서식품은 80%대의 점유율을 보이며, 매해 1조 5천억 원대의 매출을 유지해 오고 있다. 특히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는 1989년 출시이후 26년 동안 커피믹스는 부동의 판매 1위다.

 

인스컨트 커피시대에서 분말커피에서 알갱이 모양의 동결건조 커피를 만드는데도 동서식품의 기술선도가 있었다. 분무건조인 맥스웰하우스로 인기를 끌던 동서식품은 1978년 커피향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동결건조 공법의 새로운 커피 제품을 개발해냈다. 커피원액을 영하 40도의 초저온에서 동결시켜 얼음조각 형태로 만들어 증발 건조기에서 승화시켜 만드는 동결건조 공법은 1964년 미국의 제너럴푸드사에 의해, 1977년에는 AFG에 의해 상용화된 최신 기술이었다. 분무건조 공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설 투자 및 가동비용이 컸다. 그럼에도 소비자조사를 통해 커피시장이 동결건조 커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동서식품도 동결건조공법의 새로운 커피제품 개발에 착수했고, 1978 한국 최초 동결건조 커피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1980년 동결 건조방식의 커피 '맥심’이 출시되었다. 동결 건조기술에 성공한 이래 '동서식품기술연구소’의 기술 성과 중 하나는 제조공정에서 향을 선택적으로 회수하는 냉동건조 커피의 제조기술은 합작사인 크래프트사도 배워가고, 크래프트의 영국 및 독일 회사에서 도 적용되고 있다

 

커피전쟁과 고급화와 다양화

 

커피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시대가 였렸다. 1989년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한국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다. 한국네슬레가 국내 커피시장 진출 1년 만인 1990년 당초 목표했던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하면서 커피시장 변화는 급격했다. 네슬레는 불과 2년 만에 30% 가까이 국내 시장을 점유했고 5년째에는 40%까지 시장을 장악하며 동서식품을 추격했다. '커피 전쟁’이라 불릴 만큼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는 시장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판촉활동을 펼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두 회사는 과다 경품제공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더구나 당시 맥심은 소비자들로부터 몇 가지 부정적 평가에 봉착해 있었다. 우선 품질평가에서 경쟁 브랜드 대비 상대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강한 맛(strong taste)’으로 상징되는 맥심이 '쓰다’, '탄 맛이 느껴진다’와 같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둘째, 16년간 변화가 없던 맥심에 대한 고급화를 지향하던 소비자 불만이 표출되었다. 당시 네슬레란 경쟁 브랜드는 외제 브랜드로서 새롭게 인식되었고, 아울러 고급커피라는 인식되던 초이스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맛을 선보임으로써 '부드러운 커피=좋은 커피=초이스’라는 인식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으며, 맥심에 대한 품질 이미지는 낮게 평가되었다. 셋째, 경쟁 브랜드에 대한 대응으로 동서식품이 제품 가격을 15% 낮춘 저가전략을 구사하면서 '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형성되게 되었다. 품질, 브랜드 이미지, 가격, 사용자 이미지 등 전반적 요소에서 맥심은 불리한 위치에 처했다. 그 결과 동서식품의 시장점유율은 1990년대 초 70%대에서 63% 정도까지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게 되었다.

 

새로운 경쟁체제에 맞춘 동서식품의 전략은 부드러운 커피제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1989년 풍부한 향의 부드러운 커피 '맥심 모카골드’를 개발하였다. 향과 맛을 차별화한 맥심 커피의 첫 파생 제품이었다. 맥심은 제품의 품질, 포장 디자인, 광고 등 기존의 모든 것을 바꾸는 시도를 했다. 소비자로부터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커피의 맛을 개선하여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수용하고, 패키지와 가격 등 제품 요소를 전반적으로 개선하였다. 뿐만 아니라 개선된 맥심은 맥심 본래의 맛과 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 동안 단점으로 지적되어 온 뒷맛을 깔끔하게 하고, 동서식품이 자체 개발한 향 회수공법을 적용함으로써 향의 강도를 보강했다. 아울러 순하고 연하기만 한 경쟁제품과는 달리 적정 강도의 커피 맛을 유지함으로써 한 모금을 마셔도 커피다운 커피를 마셨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개선하였다.

 

결국, 동서는 브랜드에 대한 리스테이지(Restage) 작업에 적극 나서 마케팅 경쟁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맥심 모카골드’는 스틱 형태의 커피믹스로도 출시되며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설탕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현재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가 각각 78%, 20% 정도의 점유율로 각각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커피수출과 커피믹스의 세계화

 

동서식품의 커피수출은 1975년 30만달러의 인스턴트 커피의 호주 수출이후 거의 중단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커피원두 수입제한 등으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는 것조차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신제품 개발 정책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면서 수출이 다시 확대되었다. 수출의 주종목도 1982년 동서식품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커피 크리머 '프리마’였다. 프리마는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에 수출되어 1982년 17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했고 1984년 130만 달러의 수출이 이뤄짐으로써 처음 연간 수출액 100만달러를 넘어섰고 수출지역도 미국, 일본, 중동 지역으로 다변화했다. 1986년에는 일본, 호주와 미국으로 맥심이 수출되었으며,  수출실적이 1,067만 달러를 기록하며, 커피가 수출유망산업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주한미군 PX에도 맥심 제품이 납품되기 시작했고, 쿠웨이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수출 길을 열었고 1990년대 연간 수출실적이 2천만 달러를 넘어섰다.

 

동서식품이 만든 프리마는 현재 27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동서식품은 프리마를 통해 동남아시장에 커피믹스라는 제품을 최초로 소개했다. 러시아에서는 강추위를 달래기 위해 마시는 커피나 코코아에 프리마를 넣곤 하며 카자흐스탄에서는 프리마를 커피나 차 등에 우유 대신 타서 먹기도 하며, 전통음식인 빵에 프리마를 넣어 먹기도 한다. 프리마는 특히 중앙아시아 저녁식사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으며 중앙아이사 지역에서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카자흐스탄 71%, 타지키스탄 77%, 우즈베키스탄 56%, 키르기스스탄 54% 등이다. 프리마는 수출 첫해 17만 달러에서 2012년 5500만 달러로 '오천만불 수출의 탑’ 수상에 이어, 2014년에는 6000만달러를 수출했다. 커피보다도 프리마에서 성공한 것이다.

 

동서식품의 커피수출은 아직까지 크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동서식품의 지분 50%를 갖고 있는 크래프트 푸드사와의 자회사 몬델레스가 중국 커피믹스 시장에 진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내 커피믹스 시장이 아직까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커피믹스 짝퉁이 돌아다닐 정도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동서식품의 커피제품은 매우 친숙하다. 한·중 FTA로 관세 혜택이 기대되면서 중국 진출이 시도되며 동서식품에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들의 일상에 스며든 것처럼, 중국 등 아시아인의 일상생활에 한국의 커피와 커피믹스가 일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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