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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신화를 쓴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송헌재 | 2016-01-15 | 조회수: 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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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신화의 탄생


오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 우리 국민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1960년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53.7세에 불과했다. OECD 25개국의 그 당시 평균수명은 70.5세였다. 이를 비교해 봐도 우리 국민들의 건강상태가 얼마나 좋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지만 생산설비와 생산기술이 갖추어지지 못한 환경에서 몸만 힘들고 생산성은 떨어지는 그런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고된 육체노동으로 지치고 힘든 몸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고 그러다 보니 간 건강이 특히 안 좋았다. 


그러던 시절에 여러 구호단체를 통해 비타민이 보급되면서 국민들이 영양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과 동남아에서는 이미 복합 영양제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우리 국민들도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를 먹어서 영양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종합 비타민제의 개발에 주력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비타민, 미네랄, 강장제를 함께 함유하는 자양강장제의 개발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동아제약은 박카스 정을 발매하게 되었고, 동인화학은 동인 구론산, 천도제약은 단발 구론산 등을 시판하였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특히나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음주로 인한 간 손상을 보호해주는 의약품이라는 면을 강조하여 경쟁사들의 상품과 차별화를 이루었다. 이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독일 유학을 다녀온 강신호 회장의 의학적 지식이 이루어낸 차별화였다. 박카스는 간 건강과 피로 회복에 좋은 타우린을 주성분으로 만들었는데 특히나 박카스라는 상품명은 술꾼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게 해준다는 그리스 신화의 '바커스’신이 약품의 개발 동기나 효능과도 일맥상통하여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박카스의 이러한 판매 전략이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였고 월 매출이 1만개까지 늘어날 정도로 소비자의 호응이 높았다. 


1961년 발매된 박카스는 이후 50년 이상 꾸준히 판매되었는데 지난해 국내 매출이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 제약회사가 판매하는 상품 가운데 단일상품 매출이 2,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박카스가 처음이다. 박카스는 현재 국내를 넘어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브라질 등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작년에는 1981년 해외 수출을 시작한 이후 역대 최대 매출인 517억 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박카스는 처음 출신된 이후부터 2015년까지 수량으로는 192억병, 금액으로는 약 4조 2,000억원이 판매되었다. 지금까지 팔린 병의 길이를 더하면 지구를 57바퀴를 돌고도 남는다고 한다. 1932년 강신호 회장의 부친인 강중희 회장이 동아제약의 전신인 “강중희 상점”을 창업한 이후 73년 만에 동아제약은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제약회사 가운데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강신호 회장이 직접 작명한 박카스는 국민들에게 피로회복제의 대표주자로 각인되었다. 당시에는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이었는데 이와 같은 성공신화를 있게 한 신의 한 수였다고 평가할 만한 작명이다. 이정도 되면 이 또한 성공한 기업가의 기업가정신이 발현된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 번의 시련을 극복하다


박카스 발매이후 지난 55년간 박카스의 성공시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55년이 매우 오랜 시간인 만큼 박카스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일 처음의 시련은 박카스 발매 후 1년 만에 찾아왔다. 박카스는 처음 시장에 출시될 때 지금의 드링크 형태가 아닌 “정”의 형태로 개발되었는데 제조 기술이 미숙한 탓에 박카스 정의 외피를 형성하는 당의정이 녹으면서 대량 반품 사태가 빚어졌다. 약국에서 보관하고 있던 박카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버린 탓에 약국에서 더 이상 손님에게 판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신호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박카스를 앰플 형태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앰플은 운반 과정에 파손될 위험이 컸고, 또 소비자들이 앰플 박카스를 주사제로 착각, 제 손에 주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앰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자 강신호 회장은 마침내 지금의 드링크 형태인 박카스-D를 개발하였다.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는 먹기도 쉽고 시원하게 마실 때 청량감과 단 맛이 좋아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마침내 1964년에는 자양강장제 업계 1위에 오르게 되었다. 


지금 드링크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다른 형태의 박카스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당시에 마시는 형태의 피로회복제를 생각해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비타민과 영양제는 보통 알약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존의 제조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넓은 시야에서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기업가가 갖추어야 할 기업가정신의 하나일 것이다. 오늘날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는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강신호 회장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시련은 카페인 중독으로 인해 사회적 폐해가 잇따르자 1975년 의약품남용방지정책의 일환으로 자양강장 드링크 대중 광고가 전면 금지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찾아왔다. 그 당시에 동아제약은 소비자들이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동아제약은 '3M 전략’을 펼치고 있었다. 3M 전략이란 대량생산(Mass Production) 대량광고 (Mass Communication) 대량판매(Mass Sale)를 뜻하는 것으로 특히 의사나 약사를 대상으로 한 광고 관행에서 벗어나 TV나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광고를 전개하였다. 특히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TV매체에 중점을 두고 인기 코미디언 김희갑과 유명 여배우 남미리를 등장시킨 TV광고를 내보냈는데 이러한 광고 전략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박카스를 친숙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박카스는 이제 음주이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언제나 마실 수 있는 피로회복제로 인식되었고, 자연히 박카스를 찾는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이러한 대량광고 전략으로 판매증가효과를 크게 거두고 있었던 동아제약 입장에서는 대중 광고 금지조치는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TV 광고는 중단해야 했지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옥외광고와 인쇄매체를 이용한 광고는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박카스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에 매진하였는데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박카스의 맛이 더욱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가에게 있어 정부의 규제는 외생적 충격이다. 특히나 이러한 규제가 갑작스럽게 적용되고 규제의 내용이 기업 활동과 직결될 때는 큰 시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기업가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이러한 위기가 올 때 이를 잘 대처해야만 한다. 강신호 회장은 이 시기에 TV의 대체광고수단을 적극 사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규제에 빠르게 적응하였고 위기의 순간을 상품의 품질향상의 계기로 활용하였다. 위기의 원인이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서 오는 경우 이러한 위기는 오히려 기업의 전 사원이 더욱 단결하여 극복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기업가에게 달려있다. 이는 창업을 꿈꾸는 예비 기업가들이 성공한 기업가들에게 배워야할 점이다. 


세 번째 위기는 1989년에는 단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사카린이 발암 물질로 판명되면서 찾아왔다. 미국의 FDA는 사카린이 암을 유발하는 발암물질이라는 발표를 한 것이다. 동아제약은 사카린을 대신하여 단 맛을 내기 위해 과당을 사용해 제조에 나섰지만 단 맛이 예전만 못하여 소비자들에게 '물 탄 박카스'라는 항의에 직면하였다. 그동안 박카스의 단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에게 과당은 충분한 단 맛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강신호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였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회복하지 못하면 몇 십년간 이어져온 박카스의 인기도 얼마 못가 사그라질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몇 달 간의 연구 끝에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설탕)를 찾아내 박카스 본래 맛을 회복하였다. 강신호 회장은 이때를 회사의 절제절명의 위기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그 당시의 신기술개발이 중요하였는데 이는 평상시에 꾸준히 상품의 품질향상을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동아제약의 사례는 기업이 언제나 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보여준다.


마지막 위기는 정부로부터가 아닌 시장으로부터 찾아왔다. 동아제약이 박카스의 성공가도에 안주하고 있는 중에 강력한 경쟁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2001년 광동제약은 비타500을 출시하였다. 비타500은 카페인이 없는 착한 음료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다가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고 마시는 비타민이라는 의약외품, 즉 식품으로 편의점에서 판매를 시작하였다. 박카스가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약국에서만 판매되던 것에 반해 식품인 비타500은 약국뿐 아니라 편의점과 수퍼마켓의 유통망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박카스의 아성을 흔들었다. 비타500의 매출은 2001년 53억원에서 2003년 281억원, 2005년 1,213억원으로 폭증하여 2005년 박카스와 비타500의 매출 차이는 불과 42억원으로 좁혀졌다.


이후 시장에서는 두 상품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던 중 2011년 6월에 의약품의 약국외 판매, 즉 수퍼와 편의점 판매가 허용되자 동아제약은 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기업 내에서는 이미 모든 편의점은 비타500이 선점하고 있었고 의약품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약국판매를 고수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과 새로운 기회를 이용하여 시장의 확대를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즉, 박카스의 편의점 진출을 두고 매출액 확대와 이미지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내부 논의가 치열했기 때문이다. 


동아제약은 한 달 만에 용량이 커지고 청량감을 더 살린 새로워진 박카스F를 시장에 다시 선보이고 편의점 판매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동아제약의 박카스D와 박카스F의 분리 판매 전략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어 이후 비타500과의 매출차이는 다시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2015년에는 두 배 이상으로 그 차이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기업가는 때때로 중요한 경영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몰론 의사결정 시점에 그러한 결정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이후에도 만일 그 당시 다른 대안을 선택을 했더라면 어떤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지 알 수 없기에 과연 잘 한 의사 결정이었는지 평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결국 기업가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한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면 시장에서 큰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결정이었다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지금에서 본다면 그 당시 강신호 회장의 결정은 기업을 위해 잘 한 결정이었고 이후 기업가치의 성장으로 인해 기업가로서 그로 인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광고의 힘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동아제약은 광고 마케팅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단순히 광고의 양을 무차별적으로 늘렸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쉽게 기억할 수 있으며 좋은 상품이미지를 줄 수 있는 광고 문구를 만들어냈다. 1963년 드링크제로 변신한 갈색병 박카스D는 “활력을 마시자”라는 광고 문구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후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자”라는 광고카피로 박카스의 이미지를 단번에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박카스는 이러한 광고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상승하였고 이것이 판매증가로 이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93년 의약품 광고 금지가 전면 해제되자 동아제약은 휴머니티와 세대 공감에 기반을 둔 광고들을 잇달아 제작하여 기업 이미지를 제고와 판매증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스케치하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박카스 광고는 이후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여 마케팅 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파급효과까지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통금시간을 어기지 않기 위해 죽자 살자 여자 친구를 집 앞으로 데리고 뛰어가는 배우의 모습이 등장하는 CF는 박카스에 지킬 것은 지키는 바른 생활 청년 이미지를 덧붙여 박카스를 젊고 건강한 피로회복제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군대에 가려고 시력검사표의 숫자를 외우고 '꼭 가고 싶습니다!’를 외치던 청년이 등장한 CF는 사회지도층과 연예인들의 병역기피 현상에 대한 일종의 풍자의 역할을 하면서 상품이미지도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2013년에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박카스 29초 영화제를 열어 우수상 수상작을 TV에 방영했었는데 빗속을 뚫고 택배 일을 하는 아버지를 외면하는 딸의 모습과 아버지가 딸의 책상에 두고 간 박카스를 보여주며 가족의 따뜻함으로 우리 모두 힘내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기업가정신


동아제약의 광고들은 기업이 시장경쟁과정에서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는 1차적인 공헌을 뛰어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객의 신뢰를 얻은 기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정치인의 연설보다도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기업이 사회에 전하는 긍정적인 파급효과로 인해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더욱 두터워지고 이는 다시 기업의 판매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기업이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카스는 또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 하나의 대안이 되기도 하였다. 박카스 한 박스는 누군가를 찾아 뵐 때 빈손으로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고가의 선물을 들고 가기는 부담스러울 때 아주 적당한 선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대접하기에 박카스 한 병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칠성사이다, 초코파이 등과 함께 박카스를 한국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에 올려놓은 것도 이 같은 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역사가 길어지면 소비자들은 단순히 그 상품의 기능만을 소비하지 않는다. 숱한 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오랜 시간동안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과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소비자는 그 문화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더운 여름날 소중한 사람들과 시원한 박카스를 한 병을 따서 같이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문화를 제공하는 것 또한 기업의 사회적 공헌일 것이며 기업가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업가의 주가가 더욱 치솟고 있다.




송 헌 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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