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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전계운 | 2015-07-22 | 조회수: 3,828
도서명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저 자안병훈
출판사기파랑 (2011.10)
추천인전계운

◆서평


오늘날 초강대국이자 자유국가의 상징인 미국, 그 국민들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조지 워싱턴(Geroge Washington)과 미국 헌법의 기초를 다진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 남북전쟁 와중에 게티즈버그 연설을 통해 “인간은 평등하다.”며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다시 묶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을 기억하고 마음 깊숙이 존경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이유는 하나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모든 역경을 딛고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의 인식은 어떨까?
보통은 “독재자”, “친미파”, 하다못해 독립 운동을 했던 경력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라는 부정적인 수사들이 낙인처럼 각인되면서 한국인들이 그를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와의 서신과 그리고 행적이 기록된 이승만대통령의 관련 저서들을 관심을 가지고 깊이 읽어본 필자로서는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안타깝다.


그에게 붙여진 낙인들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재자”도 아니었을 뿐 더러 “친미파”도 “친일파”도 아니다. 그가 정말로 “친미파”였으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 아닌, 전혀 다른 국가의 형태나 체제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르며, 미군정이 그를 견제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독재자였다면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각종 매체들이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친일파”였다면 <독립정신>과 같은 명(名)저서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구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 운동 행적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재임 시절에 일어난,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反 민주, 反 자유적인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정치적 책임을 지고 하야를 했다. 지금도 (대통령을 평가함에 있어서)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대개 이것이 사실에 기반 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과장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으며, 특히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현재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평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자는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안병훈 역, 기파랑)』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을 통해 우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으며, 그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생소한 모습까지 모두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헌신을 했는지를...

 

목차



제1부|建國|이승만의 나라 세우기

014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33년만의 환국 제 1성
016 일본의 패망, 38선이 그어지다.
018 그날이 오면
020 미국·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
022 공산주의자가 판치는 해방 정국
023 신탁통치 가장 먼저 반대한 이승만
026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
027 하지와 이승만
028 미군정 자문 '민주의원’ 출범
031 단정(單政) 가능성 언급한 '정읍발언’
032 한국문제, 유엔에 상정
034 김구, 김규식 등 38선 넘어 평양으로
037 대한민국 '국가건설’이 시작되다.
039 5·10 선거를 통해 남녀 상하 만민이 일순에 자유롭고 평등해지다.
040 제헌국회 개원, 의장 이승만,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044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당선
050 대한민국 건국을 내외에 선포
052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옳고 정당한 선택”
054 대한민국 건국과정의 시련들


제2부|護國|이승만의 나라 지키기

058 김일성의 남침, 6.25 전쟁
062 나는 서울을 떠날 수 없다.
066 북의 남침을 통일의 기회로 삼겠다!
068 6월 25일의 트루먼
070 맥아더, 한강으로 가다.
072 “삼팔선은 의미가 없어졌다!”
074 작전지휘권 이양
076 파병 결정, 원폭 투하 때보다 어려워
078 임시 경무대의 피곤한 생활
080 낙동강 방어선
083 인천상륙작전, 정보 부족에 허덕이다.
084 적 치하의 서울
087 89일만의 서울 탈환과 환도식
091 “38선을 넘어 즉각 북진하라!”
094 평양 입성과 군중 속에 묻힌 이승만
098 중공군 참전
100 마리크의 휴전제의와 휴전협상
101 “우리는 통일이 목표야, 휴전은 반대다!”
103 아이크, 한국에 오다
106 통일 없는 휴전에는 결사반대
108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포로 석방
110 클라크 사령관, “나는 새까맣게 몰랐다”
112 경무대를 찾은 닉슨
117 18일간의 이승만·로버트슨 회담
118 “휴전은 더 큰 전쟁의 준비행위”
120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나무’를 심다.
122 독도(獨島)를 지킨 평화선 선포
124 전쟁 중에도 학교 문을 열다.
126 성공적인 농지개혁
128 원자력에 대한 선구적인 이해
130 전후복구
132 전시 지도자로서의 역할
134 일주일에 한 번씩 전선 누빈 대통령


제3부|興國|이승만의 나라 일으키기

146 “워싱턴의 겁쟁이들”
149 아이젠하워와의 불화
152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162 유엔군 사령관 초청으로 방일
166 이승만과 장제스의 우정
168 이승만 월남 방문, 고딘 디엠 방한
170 한국을 찾은 각국 수뇌들
172 부산 정치 파동
174 미 대리대사, 이승만 체포 건의
176 사사오입 개헌
180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처형
181 보안법 파동
182 이승만이 만난 사람들
190 서민의 애환을 함께 나누며
194 산업 현장에서
198 학교를 찾아서
204 종교와 문화예술의 향기 속에
212 스포츠에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다.
216 '청우계’와 같았던 프란체스카
218 4.19와 이승만
222 “이화장까지 걸어서 가겠다.”
224 “나, 하와이서 잠시 쉬고 오겠소”
226 “망명”으로 굳어진 '여행’
228 교민들이 마련해준 살림살이
230 귀국 여비 모으려 이발비도 아끼다
232 자꾸만 좌절된 귀국의 꿈
234 “어떻게 해서든지 귀국을 막아라”
236 “7월 19일 0시 35분, 임종하셨습니다.”
238 쓸쓸한 환국
240 동작동 국립묘지로 모셔지다.
244 가시밭길 걸어온 '영원한 동지’ 프란체스카


제4부|復國|이승만의 나라 되찾기

250 '문명의 전환기’에 태어나다
253 두 살 때 서울로 오다
256 풍채 좋은 아버지와 시상(詩想) 일깨워준 어머니
258 과거 실패와 배제학당 입학
260 서재필과의 만남과 긴 옥살이
264 기독교로의 개종과 옥중 동지들
268 옥중 학교와 옥중 도서실 개설
271 옥중에서 집필한 『독립정신』
272 고종황제의 부름을 뿌리치다.
274 밀사가 되어 워싱턴으로
280 서른 나이에 조지 워싱턴대학 편입
284 2년 반 만에 하버드 석사, 프린스턴 박사
290 덴버에서 연 한인애국동지 대표자 대회
292 고국 땅에서 펼친 YMCA활동
297 '105인 사건’으로 가해진 일본의 압박
298 다시 미국 망명길에
301 하와이를 독립운동 기지로 삼다
307 한인기독교회를 세우다
310 박용만과의 갈등과 대립
312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
315 필라델피아 한인대표자대회
319 모든 임시정부서 지도자로 부각
322 'Republic of Korea’의 대통령(President)
324 구미위원회의 다양한 활동
329 상하이 밀항
336 제네바 국제연맹 총회에서 독립을 호소
340 프란체스카와의 만남
344 한국인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린 프란체스카
346 임시정부 승인을 위한 외교 활동
352 이승만을 도운 미국인들
354 에필로그|건국 이룩한 희세의 위재

부록
358 이승만의 붓글씨
364 주고 받은 편지
376 삶의 궤적을 따라
384 연보(年譜)
400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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