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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경제는 모르는 경제학 기술자?

좌승희 | 2014-11-05 | 조회수: 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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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경제는 모르는 경제학 기술자?

 

최근 자본주의는 부의 대물림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한 피케티에 대한 열기로 뜨겁다. 지난 300년간 자료를 검토했더니 자본수익률이 항상 소득성장률에 비해 높고 이것이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를 시정해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면, 예컨대 상위 0.5~1% 소득계층에 80~90%, 5~10%의 계층에 50~60%의 고율의 한계세율을 부과하고 이것도 국제 이주를 통해 회피하지 못하도록 전 세계가 이에 동참하자고 역설한다. 그래도 자신은 자본주의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고 물러서지만,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몇 가지가 관찰된다.


우선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그의 하나님인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소멸론은 청산됐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에 대한 장기이윤율 저하법칙에 의해 자본주의는 성숙·소멸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피케티는 300여년의 자료를 통해 그동안 자본수익률은 하락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더 번창해 왔음을 증명한 셈이니 공교롭게도 마르크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한 셈이 됐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 자본수익에 대한 고율세금으로 수익률을 낮추겠다는 주장은 결국은 인위적으로 자본주의를 청산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셈이다. 더구나 80~90%의 세율이 어디 시장경제의 기본인 사적재산권제도와 양립할 수나 있는 것인가. 피케티는 그의 말과는 달리 자본주의 멸망을 갈구했던 마르크스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그는 자본수익률보다 낮은 저성장률과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강력한 재분배만을 주장하고 있어 경제 유인구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사회주의적 명령경제의 대증요법을 연상시킨다. 불평등을 초래하는 유인구조를 찾아 고치지 않고 재분배만 한다고 평등이 회복될 수는 없다. 그의 몰수적 고율과세정책은 유인구조의 왜곡을 통해 경제 정체를 재촉하게 될 것이다.


셋째,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발전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저성장이 문제라 했지만저성장이 왜 추세화됐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회복될 수 있는지하는 담론이 전혀 없다. 그러니 성장률보다 높은 자본수익률을 깎아내리는 일에 매달린 셈이다.


넷째, 필자는 경제 성장·발전의 원동력은 성장의 유인과 동기를 높게 유지하는 데서 나온다고 본다. 이런 상태는 각자의 경제에 대한 기여에 합당한 만큼 보상을 차등함으로써 유지된다. 각자의 경제적 성과에 미흡한 보상체제를 유지하는 사회는 몰락하게 된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그 전형적 예인데, 보상에 실망한 자들의 사보타주(sabotage; 고의적인 사유재산 파괴나 태업 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체제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성과의 차이에 따라 보상을 차등해 일정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을 유지하는 사회는 발전을 유도할 수 있지만, 성과의 차이에 관계없이 평등한 혹은 자의적인 보상체제를 강요하는 사회는 필히 몰락한다. 그래서 피케티는 고율과세를 통한 과도한 재분배·평등 추구가 성장의 유인을 차단함으로써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하향 평준화된 불평등을 더 조장할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이는 그동안 서구사회의 지속적 저성장과 불평등의 원인이 역설적으로 바로 2차 대전 이후 만연돼온 재분배와 경제평등을 추구해온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에 그 원인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불평등은 번영의 전제이지만 평등은 번영의 안티테제(Antithese)이다.


다섯째로, 그럼 불평등의 원천은 어디인가? 시장은 바로 스스로 돕는 자만 도움으로써 성과에 따른 차등보상을 통해 성장의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다. 시장에서 구매력을 가지고 우수한 재화와, 개인과 기업만을 선택하는 우리가 바로 경제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며, 이런 우리 자신들을 꼼짝 못하게 묶지 못하는 한 불평등은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삶의 본질이다. 불평등의 책임을 자본주의에 전가하기에 앞서 책 팔아 가난한 자 돕기보다 부자되러 한국에 온 피케티는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피케티는 수식은 잘 알고 자료정리에 큰 기여를 했다지만경제는 잘 모르는 경제학 기술자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논평이 피케티의 글을 좀 더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출처: http://eiec.kdi.re.kr//nara/contents/nara_view.jsp?sendym=201411&idx=9644

     피케티, 경제는 모르는 경제학 기술자?, 좌승희, 나라경제 11월호, 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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