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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고철혁 | 2017-01-06 | 조회수: 4,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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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그 속의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다양함은 곧 다름의 공존을 뜻하며, 각각의 개인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의 목적이 같지 않은 만큼, 누구의 가치가 더 좋고 나쁜 가를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자신과 비교하여 함부로 평가하곤 한다. 타인의 대한 평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평가 중 하나는 '돈’으로 급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듯이,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한 파급효과가 나타났던 키워드를 떠올려보면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등과 같이 젊은 층의 부정적인 경제 현실을 표현해내는 단어들이 있었다. 이러한 단어들이 탄생한 원인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탈출해야 하는 지옥, 부모만 잘 만나면 놀고먹어도 살 수 있는 사회 따위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예 부정하지는 않는다. TV만 틀어도 나오는 정치인들의 경제 비리, 부모님의 경제능력이 뛰어나 부유한 주변 친구들의 소비를 보면 가끔 나의 모습이 초라해질 때도 있지만, 나는 그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그들과 동등한 경제능력을 얻는 것으로 격차를 좁히고 싶지는 않다. 내게 소중한 것들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법으로 보호해주기를 바라듯이 나 이외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게다가 나의 능력이 남들보다 부족해서 경제적 수준을 강제적으로 같게 해주는 기제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나에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롯이 나의 힘만으로 앞에 놓인 격차들을 하나하나 이겨낼 것이다.

 

 격차는 남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삶 속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아내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사회 또한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궁극적인 해결법은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가 바뀌지 않고 더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억울함을 아무리 피력해도 그것은 고요속의 외침일 뿐이다.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는 것은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성공을 꿈꾸면서 성공을 위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격차를 자신의 힘, 의지로는 절대 좁힐 수 없다고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포기해버리는 자에게 사회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한다.

 

 열등감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보다 잘난 누구에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제3자가 정하여 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노. 당연히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은 분노만 한다고 변하지 않는다. 단순히 분노하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많다고 해서도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자신의 열등감을 이용하여 분노의 화살을 기득권에게 향하도록 자극하여 사회 각 계층을 이간질하고, 붕괴시키려는 악당들은 자신의 삶에 일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기업가 정신만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바꿀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 포퓰리즘에 빠진 대한민국은 당연한 격차를 더욱 비극적으로 제시하여 경제적인 능력이 낮은 사람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 하고 있다. 자신의 돈도 아닌 국민의 세금을 복지정책으로 사용하여 돈의 출처가 아닌 권한을 양도받은 자가 생색을 내며 민주주의를 훼손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조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너무 당연하게 묵살되는 것이 현실이다. 차별(差別)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사회의 움직임은 오히려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저 민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표심을 얻으려는 자들의 횡포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격차는 그러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의 발현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격차를 인간의 힘으로 강제하려는 것은 무한한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고철혁 │ 자유경제원 인턴, 중앙대 역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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